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충실하게  

사이배슬론 2020에서 동메달 석권한 이주현 선수와 든든한 후원자 나동욱 교수사이배슬론 2020에서 동메달 석권한 이주현 선수와 든든한 후원자 나동욱 교수 

이주현 씨는 고3 졸업을 한 달여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하지마비 판정을 받았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좌절하기보다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고,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엔젤로보틱스, 세계 로봇재활 올림픽 금메달 달성 _ 나동욱·공경철 교수 ‘워크온슈트4’ 로봇기술 우수성 증명

세브란스 재활병원 재활의학과 나동욱 교수와 KAIST 기계공학과 공경철 교수가 이끄는 엔젤로보틱스가 지난 13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2020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착용형 외골격 로봇 종목에 출전한 김병욱 선수(47, 남)는 소파에서 일어나 컵 쌓기, 장애물 지그재그 통과하기, 험지 걷기, 계단 오르내리기, 옆 경사로 통과하기, 경사로 및 문 통과하기 등 6개 부문에서 3분 47초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함께 출전한 이주현 선수(20, 여)는 5분 51초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 나동욱 교수는 “금메달과 동메달은 우리나라 로봇기술과 선수들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워크온슈트4의 기술력이 상용화되면 하지마비 환자들의 재활 및 사회 복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_ <의학신문>, 2020년 11월 16일.


사이배슬론 첫 출전, 동메달 쾌거

2020년 11월 나동욱 교수(재활의학과)팀의 사이배슬론 대회 1, 3위 석권 소식이 여러 언론에 일제히 보도되었을 때, 사람들은 한국의 뛰어난 로봇기술력에 깜짝 놀라면서 인간 승리를 보여준 두 선수의 노력과 열정에 찬사를 보냈다. 사이배슬론은 인조인간을 뜻하는 사이보그와 경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애슬론의 합성어로, 하지마비 등의 신체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최첨단 로봇을 이용해 운동경기를 치르는 국제대회다. 이번에 금메달을 수상한 김병욱 선수는 나동욱·공경철(KAIST 기계공학과) 교수팀의 일원으로 2016년 제1회 대회에 참여해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동메달의 주인공 이주현 선수는 2019년 1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고, 그해 6월 나동욱 교수팀에 합류해 로봇을 처음 접한 터. 사고 이후 약 22개월 만에 출전한 첫 국제대회에서 3위라는 좋은 결과를 기록한 이주현 선수는 경기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는 저의 삶에 큰 도전으로 남은 것 같다. 다시 걷는 경험을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순간에 날아간 스무 살의 꿈

5다시 걷는 감격을 이야기한 이주현 선수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대학 생활을 꿈꾸고 있었다. 제과제빵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하고 고3 1학기도 마치기 전에 이미 미국의 명문 사립 요리대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의 입학 허가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여느 고3들처럼, 2019년 새해를 맞아 학창 시절의 마지막이자 스무 살의 시작을 여유롭게 보내고 있었다.
푸른 꿈 가득하던 그녀의 인생을 뒤바꾼 그 사고가 발생한 건 2019년 1월 12일. 외할머니를 뵙기 위해 순천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 중이던 주현 씨는 사거리에서 신호 위반을 한 채 달려드는 반대편 차량과 크게 부딪혔다. 그 사고로 그녀는 척추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입었다. "사고 당시에는 현실감이 없어서 통증보다는 놀란 게 더 컸습니다. 사실 다치자마자 내 몸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던 것 같아요. 그 순간 다리가 안 움직였거든요."
서울에서 딸의 전화를 받은 아버지 이종광 씨는 곧바로 순천으로 출발했다. 이상하게 불안했지만, 그래도 순천 시내에서 벌어진 사고니까 가벼운 접촉 사고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1/3 지점쯤 내려갔을 때, 날벼락 같은 소식이 그를 덮쳤다.
"급하게 이송된 병원에서 수술 전에 담당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상황을 설명하고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굉장히 심각한 상태라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던 그날을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마치 어제의 일인 양 아픔이 선명했다.


대회 후 한 달여 휴식을 가졌던 이주현 선수는 지난해 12월부터 다시 워크온슈트4를 입고 보행훈련을 시작했다.대회 후 한 달여 휴식을 가졌던 이주현 선수는 지난해 12월부터 다시 워크온슈트4를 입고 보행훈련을 시작했다.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기에

응급수술을 마친 이주현 씨는 결국 척추골절로 인한 하지마비 판정을 받았고, 어쩔 수 없이 미국 대학도 포기한 채 2019년 늦은 봄 신지철 교수(재활의학과)를 찾아와 입원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신지철, 나동욱 교수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나동욱 교수팀의 일원으로 사이배슬론 대회를 한번 준비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을 수락하면서 주현 씨의 삶은 다시 한번 전환기를 맞았다.
"그전까진 로봇을 접해본 적이 없으니까, 로봇을 착용하고 펼치는 운동경기가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팀에 합류하고 보니 생각보다 규모가 훨씬 큰 세계적인 대회여서 부담도 좀 됐습니다."
사고 후 약 5개월 만에 로봇을 착용하고 다시 걸어본 그녀. 로봇을 입고 걷는 건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었는데, 실제로 로봇기술이 개발돼서 현실에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고. 그렇게 주현 씨는 사이배슬론 2020 출전을 목표로 로봇 보행훈련을 시작했고, 수능 공부도 병행했다. 그리고 지난해 초, 대표선수 선발과 이화여대 합격이라는 기쁜 소식을 거머쥐었다.
갑자기 장애를 얻게 된 것도 너무나 큰 충격이었을 텐데, 사이배슬론 팀 합류에 수능 공부까지, 어떻게 그 짧은 기간에 충격을 극복하고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지금도 그 고통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미 사고는 벌어졌으니까요. 다쳤다고 해서 그냥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더 우울해지고 힘들어질 뿐이니까,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뭐라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시 미래를 그리는 소중한 시간들

사이배슬론 국가대표 선수이자 이화여대 새내기로 힘차게 2020년을 시작했지만, 선수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대회 준비 막바지에는 몸이 부서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잠드는 날도 있었다. 다행히 그녀의 성실함은 동메달이라는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주현 씨는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이배슬론에 계속 참가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이배슬론의 모든 과정이 저한테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너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지금 이 시간들이 큰 위로이자 또 하나의 자극제가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과 한 팀이 되어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낸 경험 자체가 큰 보람이었습니다." 


이주현 씨는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서 다양한 꿈을 키우고 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때문에 새내기 시절이 끝나도록 학교를 딱 3번밖에 못 가본 건 너무 아쉽지만, 평소 요리 다음으로 관심 있었던 정치외교 분야의 학문을 배우면서 막연하게나마 미래를 그려보는 지금 이 시간이 즐겁다. 지난 2학기에는 국제정치학 개론 수업을 들으면서 환경 파트에 특별한 재미를 느껴서 환경 관련 국제기구에서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반신 마비라는 충격적인 사고 2년 만에 세상 모두가 놀랄 만한 성과를 이뤘지만, 장애인에게 불친절한 우리 사회의 시스템으로 인해 주현 씨가 겪는 순간순간의 좌절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저 닥쳐온 현실을 받아들이고 견디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성실히 해내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들을 위해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병원에서는 세면대 높이부터 모든 시설이 환자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에 나가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화장실도 좁고 불편하고,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없는 곳도 많고요. 심지어 집 안의 문턱까지 사소한 것들이 모두 불편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부분을 마주치더라도 너무 낙담하지 말고, 더 많이 밖으로 나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장애인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질 테니까요."


사이배슬론 2020 대회 출전 모습. 이주현 선수는 총 6개의 미션을 5분 51초에 완수해 동메달을 차지했다.사이배슬론 2020 대회 출전 모습. 이주현 선수는 총 6개의 미션을 5분 51초에 완수해 동메달을 차지했다.

착용형 로봇이 평범한 일상의 기술이 되는 그날까지
착용형 로봇 개발 이끄는 나동욱 교수

최근 로봇기술의 발전이 눈부십니다. 최신 로봇은 장애를 가진 환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재활 분야에 적용되는 로봇은 크게 재활치료 목적과 일상에서의 기능을 보조하는 보조기 역할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행장애가 있는 환자를 예로 들어봅시다. 걷는 게 불가능한 하지마비 환자라 하더라도 몸에 하네스를 걸어 체중을 받쳐주고 치료사 3명이 환자의 양쪽 다리와 몸통을 각각 붙잡고 걷기 연습을 해주면 환자의 다리 근력뿐 아니라 상체의 균형도 좋아지고, 마비된 다리의 관절이 굳는 것도 방지할 수 있으며, 더불어 심폐기능도 좋아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방식의 재활치료를 시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로봇재활치료는 이렇게 치료사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운동학습을 좀 더 쉽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서 신체의 기능 회복을 돕는 목적으로 시행됩니다.

이런 로봇재활치료는 모든 환자에서 가능한가요?

척수손상, 뇌졸중, 뇌성마비, 파킨슨병, 외상성 뇌손상, 뇌종양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팔다리의 기능이 떨어져 운동훈련이 필요한 경우라면 원칙적으로 모두 로봇재활치료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불완전 마비가 있는 뇌졸중 환자들도 로봇재활치료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환에 따라 일률적으로 로봇재활치료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환자의 개별 상태에 맞는 치료의 목표를 먼저 세우고 그에 따라 적절한 로봇재활치료를 시행합니다. 세브란스 재활병원에 마련된 보행재활로봇만 해도 단계별로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로봇 보조기는 재활치료용 로봇과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나요?

로봇 보조기는 쉽게 말해 안경과 비슷합니다. 시력이 나쁜 사람들이 안경을 쓴다고 시력이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큰 불편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보행장애가 있는 환자가 로봇 보조기를 입는다고 다리 마비가 호전되어 걷는 기능 자체가 회복되는 건 아니지만, 마치 아이언맨처럼 로봇슈트를 입고 걸어 다니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물론 보조기 목적으로 제작된 착용형 로봇이라 해도 이걸 입고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니까 재활치료의 효과도 함께 나타납니다. 다만 재활치료용 로봇은 치료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 사용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재활치료를 통해 기능 회복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로봇 보조기는 장애인들이 좀 더 편안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편한 정도만 비교하자면 전동 휠체어가 착용형 로봇보다 좀 더 좋은 거 아닌가요?

가만히 앉아서 버튼만 누르면 되는 전동 휠체어가 당장은 좀 더 편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동 휠체어가 가지고 있는 편리함은 걷기를 비롯해 일상에서 이뤄지는 사소한 동작들이 모두 제한된 상태에서만 누릴 수 있는 편리함입니다. 보행장애를 가진 환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뭘까, 환자에게 좀 더 도움이 되는 기술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답은 명확합니다. 착용형 로봇은 단지 겉보기에 멋있고 신기한 기술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제약을 줄여주는 데 꼭 필요한 핵심 기술입니다.

착용형 로봇의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발전했으며,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미 현재의 착용형 로봇으로 걷기는 물론 계단 및 경사로 오르내리기 등 일상의 많은 동작들이 가능하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합니다. 실제 환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로봇을 입고 학교도 다닐 수 있어야 하고,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어야 하며, 평범하게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사이배슬론 제1회 대회 당시에는 착용형 외골격 로봇 종목의 미션 6개 가운데 5개를 10분 안에 해내기도 버거웠다면, 현재의 로봇은 6개의 미션을 4분 안에 완수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4년 동안 상당한 기술 발전을 이룬 셈이지요. 요즘 길거리에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착용형 로봇을 입고 걸어 다니는 모습이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 되는 그날이 로봇 개발에 몰두하는 이들의 최종 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동욱 교수(재활의학과)

환자들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끝없이 도전하는
나동욱 교수(재활의학과)


뇌성마비를 비롯해 선천성 장애를 가진 소아 환자들의 재활치 료가 전문 분야다. 최선을 다해 재활치료를 해도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인체 움직임의 원리를 파헤치는 생체역학과 보조공학 분야를 깊이 연구해왔으며, 일상에서 사용 가능한 착용형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진료실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예쁘다는 생각 부터 든다고. 로봇기능을 접목한 의료기기를 연구하는 이유 또 한 이 아이들에게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에디터 박준숙 포토그래퍼 최재인